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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과 반지성의 종교, 그 끝은 어디인가”

쥐포보다오징어 2025. 6. 28. 14:40

오늘 우리는 한국 사회의 종교, 그 중에서도 개신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질문을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왜 교회는 서로 갈라서고, 왜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생각마저 금지하려 하는가?”
“정말 이 종교가 내 삶에 도덕적 기준과 진실을 제시해 주고 있는가?”

오늘 우리가 마주한 개신교의 현실은 그 질문 앞에서 침묵하거나, 때론 외면합니다.


1. 교리라는 이름의 끝없는 분열

개신교는 스스로를 '오직 성경'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성경 해석의 차이로 인해 스스로를 수만 갈래로 찢어놓은 종교입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의 개신교 교단 수는 4만 7천 개.
2025년엔 4만 9천 개, 2050년엔 무려 6만 4천 개를 넘길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왜 6만 개나 되는 다른 진리가 필요합니까?”

길 건너 교회마다 “우리가 정통이다”라고 외치지만, 교리와 해석은 서로 다르고, 예배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이쯤 되면 누가 옳고 그르다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진리는 사라지고, 교리는 도그마가 되어 사람을 판단하고, 공동체를 나누고, 결국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무기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2. 반지성주의 — ‘생각하지 말라, 믿기만 하라’

더 큰 문제는 교회 안에 퍼진 반지성주의입니다.
신자는 질문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의 말에 의문을 품는 순간, 믿음이 약한 자로 낙인찍힙니다.

이 얼마나 위험한 구조입니까?

한때는 ‘질문하는 인간’이 신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개신교회는 질문을 금지하고, 무조건 믿으라고 말합니다.
이성은 배척되고, 비판은 ‘배교’로 간주됩니다.

심지어 팬데믹 기간 중, 서울의 한 대형 교회는 방역을 거부하고 정부가 생화학전을 벌이고 있다는 음모론을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는 집단 감염사회적 혼란, 그리고 국민적 분노였습니다.

“이것이 정말 신앙입니까, 아니면 무지에 기반한 광신입니까?”


3. 분열은 신앙을 병들게 하고, 반지성은 교회를 고립시킨다

신자 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층의 교회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무비판적 믿음, 권위주의적 설교, 시대에 뒤처진 가치관을 따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실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4%가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단순한 이미지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교회가 사회와의 대화에 실패했고, 변화에 눈 감았으며, 반성을 거부했기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4. 묻습니다, 이 길의 끝은 어디입니까?

오늘의 종교가 내일의 혐오가 된다면,
오늘의 믿음이 내일의 맹목이 된다면,
우리는 이 종교를 종교라 부를 수 있을까요?

분열과 반지성,
이 두 축은 지금 개신교회의 기반을 안에서부터 흔들고 있습니다.
내부로는 공동체가 붕괴되고, 외부로는 사회와 고립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교회가 과연 미래 세대에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교회는 더 이상 회피하거나 감정에 호소할 수 없습니다.


5. 답을 줄 수 없다면,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여러분, 신앙은 맹목이 아닙니다.
신앙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지금 개신교는 질문을 금지하고, 분열을 반복하며, 이성보다는 맹신을 강요합니다.

한 목회자는 말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교회는 자멸의 길을 걷는다.”

바로 지금이 그 길목에 서 있는 순간입니다.

교회가 존립을 원한다면, 진짜 성찰이 필요합니다.
자기반성 없이, 변화 없이, 오직 교리와 권위에 의존하는 집단이라면—
그건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이념 집단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 답할 시간입니다.

“진리를 말하고 싶다면, 먼저 진리 위에 서십시오.”

저는 오늘, 이 질문을 한국 교회에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정말, 진리를 말할 자격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