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전파인가, 폭력의 정당화인가. 수백 년 전 시작된 성스러운 침묵이, 오늘 우리는 그 무게를 마주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사랑’과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의 발걸음이 도착한 자리마다 토착 공동체는 피를 흘렸고, 그들의 언어와 신앙은 불에 탔으며, 아이들은 부모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진실은 불편합니다.
하지만 거룩함 뒤에 감춰진 침묵을 깨는 것, 그것이 오늘 보도의 목적입니다.
⚔️ 교황의 서명 아래, 식민지는 시작되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닿자, 교황청은 가장 먼저 ‘신의 이름으로’ 그 땅을 나누었습니다.
교황 니콜라오 5세,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이들은 *“기독교인이 아닌 자의 땅은 정복 가능하다”*는 교서를 반포하며, 식민주의의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이른바 ‘발견의 원칙(Doctrine of Discovery)’.
이 원칙은 단순한 종교 문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수억 명의 삶을 무너뜨리고, 수백 개 공동체를 지워낸 제국주의의 종교적 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으로도, 이 원칙은 훗날 미국 대법원이 원주민의 토지 권리를 박탈하는 법적 근거로 인용됩니다.
🩸 복음의 그림자: 학살, 노예화, 문화 파괴
카톨릭의 십자가가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복자의 방패에 함께 걸릴 때, 십자가는 사랑이 아니라 공포의 상징이었습니다.
개종을 거부한 이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토착 신앙은 ‘이단’이라 불리며 소각되었고, 아이들은 강제로 기독교 학교에 보내졌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그 곁에서, 때로는 맨 앞에서 이 과정을 승인하거나 조장했습니다.
물론,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같은 고발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미미했고, 교황청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침묵이라는 방조로 학살과 억압을 공인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노예제도의 수혜자이기도 했습니다. 일부 수도회는 식민지 농장을 운영하며 노예 노동을 직접 활용했고, 교회 자체가 인권 침해의 공범이었습니다.
👣 끝나지 않은 폭력 – 원주민 기숙학교의 진실
시간은 흘러도 폭력은 형태만 바뀌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캐나다와 미국 정부는 원주민 아동들을 강제로 가족으로부터 떼어내 ‘기숙학교’에 수용했습니다.
그 학교의 다수는 가톨릭 교회가 운영했습니다.
150,000명. 이 아이들은 언어와 문화를 금지당했고, 심각한 체벌과 성폭력, 영양실조, 의료 방치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2021년. 브리티시컬럼비아 전직 기숙학교 부지에서 215명의 아이 유해가 발견되었고, 캐나다 사회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과했습니다. 눈물을 흘렸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악”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 뒤에 책임은 있었는가?
보상도 없었고, 명확한 가해자 지목도 없었습니다.
일부 교계 언론은 오히려 ‘눈물’, ‘선물’, ‘연민’이라는 키워드로 사건의 본질을 흐렸고, 피해자들은 또다시 2차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 남겨진 유산 – 분노는 계속된다
202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후니페로 세라 신부의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끌어내려졌습니다. 그는 ‘선교의 성자’가 아닌 ‘식민 침략의 얼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캐나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교황청에 요구합니다.
“당신들이 남긴 교서를 폐기하라. 진정한 사과를 넘은, 실질적인 보상을 하라.”
일부 국가는 교회가 불법적으로 취득한 땅을 원주민에게 환원하라는 법안을 추진 중이고, 교회 내부에서도 일부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더디고 조심스럽습니다. 가해자의 논리로 서 있는 교회가, 진심 어린 피해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엔 아직 너무 멀었습니다.
⛪ 마지막 질문 – 도덕적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사랑을 전한다는 이들이 침묵으로 폭력을 묵인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들이 어린이를 학대했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공식적으로 그 교서를 폐기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복음서가 피 묻은 땅 위에 세워졌을 때, 교회의 도덕은 이미 허물어졌습니다.
“신앙은 단지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책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교회가 그 책임을 회피해 왔다는 불편한 진실을, 다시 한번 목격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진정한 회개의 길로 나아가려면, 이제는 더 이상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뉴스룸에서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