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 인류의 구원을 위한 완전한 계시로 믿어지는 성경.
그러나 그 ‘완전성’은 과연 검증 가능한 진실일까요?
수천 년간 권위로 군림해 온 이 텍스트가 정말로 오류 없는 신의 말씀이었는지,
아니면 인간의 한계와 시대적 한계를 지닌, ‘거룩한 신화집’이었는지,
지금부터 그 실체를 파헤쳐 봅니다.”
🎥 “부활 사건, 시간도 인물도 엇갈렸다” – 성경 속 ‘자기모순’들
성경은 ‘전능한 하나님’이 영감을 줘 기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전능”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놀라울 정도의 기록 불일치가 발견됩니다.
예수의 부활 사건을 다룬 복음서만 봐도 그렇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무덤에 해가 뜬 뒤 마리아가 도착했다고 적었지만,
요한복음은 아직 어두울 때였다고 말합니다.
같은 사건, 다른 시점.
열왕기상 7장과 역대하 3장에서는 같은 성전 기둥의 높이를
각각 18규빗과 35규빗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33장에서는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하면서도,
창세기 32장에서는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고
“내가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이쯤 되면,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편집자가 실수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 “박쥐는 새, 곤충은 다리가 넷?” – 과학과 어긋나는 성경 지식
레위기 11장을 보면 박쥐는 새로, 메뚜기는 네 발 가진 곤충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오늘날 생물학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오류입니다.
토끼가 되새김질을 한다는 구절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가장 대표적인 과학적 충돌은 창세기의 6일 창조설입니다.
하지만 현대 천문학과 지질학은
우주의 나이 약 138억 년, 지구는 45억 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6일이라는 숫자와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죠.
여호수아가 전투 중 태양을 멈추게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지구가 멈추면 지표면의 모든 것은 관성으로 날아가고,
지구 전체가 파괴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어느 고대 문명 기록에도 그와 같은 ‘긴 낮’은 없습니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성경은 분명히
‘고대인의 인식 한계 속에서 쓰인 문서’로 보입니다.
🎥 “신의 이름으로 학살, 차별, 강간까지 정당화?” – 성경의 도덕적 문제
성경이 ‘도덕의 근본’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엔,
그 속에 기록된 내용은 때때로 윤리적 충격을 줍니다.
대표적인 예는 가나안 정복입니다.
신명기 20장 1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는 집단학살을 신이 명령한 셈입니다.
노예 제도도 정당화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1장에는, 종이 주인에게 맞아 하루 이틀 후 죽으면
“처벌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권”이 아닌, “재산”으로 취급된 노예에 대한 성경의 인식입니다.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법률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신명기 22장에 따르면, 처녀가 강간당하면
가해자는 피해자와 결혼하고, 여성의 아버지에게 돈을 지불하면 처벌받지 않습니다.
강간범과 평생 살아야 한다는 법, 그것이 성경 율법입니다.
전쟁터에서 예쁜 여성을 아내로 삼는 규정(신명기 21장)은
전쟁 포로 여성의 성적 노예화를 정당화한 조항입니다.
🎥 “롯은 의인인가? 근친상간과 딸 희생에도” – 가치 판단의 혼란
성경은 ‘의로운 사람’ 롯을 칭송합니다.
하지만 실제 그가 했던 일은,
소돔에서 몰려온 자들에게 자신의 딸들을 내어주겠다고 제안하고,
훗날 술에 취한 채 딸들과 근친상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인물을 성경은 “의인”이라 부릅니다.
오늘날의 윤리 기준이라면,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도덕적 기준이 왜곡되어 있고, 성경 자체가 이를 묵인하거나 미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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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수천 년간 인류의 도덕과 영성의 뿌리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모순, 과학적 오류, 도덕적 혼란을 마주한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질문하게 됩니다.
‘이 책은 진리인가, 아니면 권위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은 시대의 산물인가?’
믿음은 자유지만, 성찰은 책임입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더는 고통과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맹신이 아닌, 질문하는 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