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세계청년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모여 가톨릭 신앙의 가치를 배우고, 신앙의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수 성향 성직자들에게 강경한 징계를 내리며 논란을 일으킨 상황에서, 이 대회가 과연 청년들에게 진정한 유익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2023년 11월, 교황청은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에게 파문을 선고하고, 레이몬드 버크 추기경에게는 주택 제공과 급여 지급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들은 모두 교황의 진보적인 정책에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습니다. 교황은 이들의 비판을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는 행위로 보고, 강력한 처벌을 내렸습니다. 비판과 대화보다는 ‘권위’와 ‘복종’을 강조하는 이런 태도는, 청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까요?
가톨릭은 본래 사랑과 포용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의 최근 행보는 종교의 근본적인 가치인 '사랑'과 '포용'보다는 '권위'와 '통제'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황이 자신에게 도전하는 목소리를 억누르고 강압적으로 처벌하는 모습은, 청년들이 배우기를 기대하는 신앙의 가르침과 정반대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2027년 세계청년대회는 청년들에게 가톨릭 신앙의 가치를 전달하고, 미래의 교회 지도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교황이 보수 성직자들에게 내린 처벌은, 청년들에게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는 청년들이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고,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데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종교적 행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단순히 교리나 전통에 대한 지식뿐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교황의 강경한 태도는, 오히려 청년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것보다, 권위에 대한 복종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위험이 큽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청년들이 교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감정은 '순응'이지 '자율적 사고'가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의 목소리만을 허용하고, 다른 의견을 제압하는 분위기라면, 청년들은 창의적 사고와 개인적 성장을 제한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추구하는 포용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의 행동은 청년들에게 중요한 리더십의 모델이 됩니다. 그들의 도덕적 기준과 리더십의 본질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종교 행사입니다. 그러나 교황이 비판을 억누르고, 반대 의견을 강력히 처벌하는 모습을 보이며, 청년들에게 '권위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이는 잘못된 리더십을 가르치는 셈이 됩니다. 청년들이 배우길 바라는 것은 '강력한 권위를 가진 지도자'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입니다.
지금 교황이 보여주는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은, 종교가 가진 본래의 가치인 사랑과 포용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위험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제공되는 리더십 모델이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이라면, 그들이 사회에서 성장하고, 진정한 도덕적 가치를 실천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2027년 세계청년대회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은 한국 청년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황의 태도와 정책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이 대회가 청년들에게 정말 유익한 신앙의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청년들에게 포용과 사랑,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면, 교황의 리더십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청년대회는 오히려 종교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청년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가치에서 멀어지게 될 위험이 큽니다.
2027년 대회가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려면, 교황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이 ‘권위’보다는 ‘포용’과 ‘대화’를 우선시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대회는 그 본질적 가치를 희석시키고, 오히려 청년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